소리 내어 시를 읽다

정태춘의 음악을 흥얼거리다가 퍼뜩 곽재구의 시(유곡나루)를 펼쳐 들었다. 별 게 아니라 청계천 8가를 읊조리다 김정환의 시(성탄)를 들추는 것 같은 것이다. 소리는 성대를 울리는 순간 벽 구석구석에서 울리더니 가슴팍으로 왔다. 이런 즐거움을 잊고 있었다는 것은 나를 오래 돌보지 않은 것이다. 눈앞에서 맴돌던 것들이 숨 쉬면서 조잘댄다. 그러면 움직이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내일 하루 정도는 이것만으로도 위안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몇 사람을 더듬다가 김승희까지 갔다.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날들은 고등학교의 몇 년과 군대의 화장실 칸막이였다. 여직까지 내 악몽은 고등학교의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것과 군대 어느 구석에서 헤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들은 아무리 세월이 쌓여도 돌아보기가 끔찍하다. 내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토악질 나고 때로는 권태로운 기억들이다.

김승희를 처음 만난 것은 우습게도 마음을 경건하게 하자는 이유에서였다. 중학교 어느 날 처음 자위행위를 했다. 그게 뭔지도 잘 모를 때였고, 알 수 없는 죄의식으로 자위행위 후에 지옥의 형벌이 고스란히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내 주위에 있던 누구도 자위행위가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하지 않았고, 어쩌다 에둘러 물으면 선생들의 조언은 죄다 입에 녹음기를 달은 듯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였다. 전봇대에는 에이즈 경고문만 덕지덕지 붙어있던 시절이었다. 전봇대의 전단지는 친절하게도 에이즈의 증세에 대해서 세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는데, 살이 빠지고 설사를 한다는 문구가 그 중 하나였다. 한 동안 설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혹시 에이즈에 걸린 거 아닐까하며 며칠 밤을 잠 못 이루고 긍긍했다. 그렇게 죽기엔 너무 억울한 나이였다. 혼자 조릿거리고만 있다 <10대들의 쪽지>를 서점에서 보게 됐다. 그걸 들추는데 자위행위에 대해서 나같이 고민하는 무차별 10대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시를 읽으며 마음을 경건히 하라는 것이었다. 당장 몇 권의 시집을 샀다. 김소월과 박재삼을 샀고, 며칠 밤새 읽고 학교에서도 읽고, 어느 순간엔가 달달 외울 정도가 됐지만 자위행위를 그치지 못했다. 그 두 권 가지고는 성이 안찼는지 내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는지 멋모르고 산 시집이 김승희였다.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샀는데, 뒤표지의 시인의 얼굴을 보며 공포를 느꼈다. 그의 눈은 생게망게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눈을 보고 있자면 절대 자위는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저승편지’라는 시에선 꼭 짚어 내게 하는 말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아들아 보아라 욕정의 무늬만큼 저승의 무늬도 또한 번지고 있다” 김승희 마저 달달 외울 정도가 됐지만 나의 자위행위는 더더욱 큰 고통이 되고 만 게 다였다. 여하튼 그렇게 몇 날을 지나고 나서 나 말고도 자위행위를 하는 친구들을 발견했고, 조금 더 지나서는 나보다 훨씬 전부터 안 하는 놈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위안을 받았다. 그즈음해서 생물 선생에게 자위해도 에이즈에는 걸리지 않는 다는 답을 들었다. 새롭게 태어난 것만 같았다. 내가 좀 더 인간관계의 폭이 넓었다면 애초에 그런 쌩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퍽이나 우습게 김승희와 조우했다.

흐지부지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맙소사 입학식부터 수업이라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도시락도 안 싸갔건만 오후에도 수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내내 혼자서 ‘이런 징글맞은 곳이 있다니, 이런 징글맞은 곳이 있다니’앙잘거렸다. 그렇게 내 고등학교 첫날의 인상은 배고픔과 징글맞은 곳이라는 각인이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란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같은 중학교에서 함께 온 친구는 한 명도 없었고, 선생들은 기계처럼 아이스하키 스틱을 마구 휘둘렀으며 두발은 교내 이발소에서 전교생을 똑 같이 깍두기로 만들었다. 학교 바깥에선 최루탄 냄새로 눈을 뜰 수도 비빌 수도 없었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는 어디 하나라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세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가방에는 교과서는 간데없고 온갖 잡다한 소설과 시집으로 꽉 찼고, 새벽부터 하는 심화수업은 며칠을 버겁게 나가다가 관두고 말았다. 나는 날마다 김승희를 어루만지고 살았고 그 즈음 어느 날 신촌문고에 들러서 그의 새로운 시집을 훔쳤다.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정말이지 훔치고 싶어서 훔친 게 아니라 돈이 없었다. 학원비를 땡땡이 친 것은 이미 다른 책들을 사는데 써버렸고, 우유 값은 영화를 몇 편보고 나니 없었다. 어려서 장난감 훔치다 걸린 뒤로는 첫 도둑질이었는데 안 하던걸 하려니 내 심장소리가 신촌문고에 울리던 음악소리보다 몇 배는 크게 들렸고, 모든 책 손님이 내게 손가락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조마조마 신촌문고를 빠져나온 뒤 감격에 겨워 시집을 어루만졌다. 며칠 그것들을 듬성듬성 읽으며 보냈다. 몇 날 후 수업 시간에 그의 시집을 꺼내서 읽고 있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교실에서 나가지 않으면 내 모든 혈관이 터져서 피들이 뿌아하고 교실 천장을 덮을 것 같았다. 3교시가 끝나고 잽싸게 도시락을 먹고는 학교를 빠져나왔다. 이럴 수가 바람은 살살거리고 하늘은 가없는데 막상 나오니 갈 데가 없는 것이다. 그 넒은 세상 천지에 월담한 고등학생이 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던 것이다. 집으로 갔다. 방바닥을 뒹굴다가 돼지 저금통 배를 갈랐다. 몇 천원을 만들어서 크리스탈 극장으로 갔다. 지금 신촌의 ‘그랜드마트’는 크리스탈 백화점이었고 그 꼭대기에는 영화관이 있었다. 암암한 기억을 더듬자면 로빈후드를 봤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여전히 하늘은 파랬다. 문득거리며 갈데없이 헤매다 연대로 갔다. 학교 앞엔 전경들이 즐비 했으나 내 교복을 보고는 아무도 시비를 걸진 않았다. 거기 어느 구석에 윤동주 詩碑가 있는데, 그곳은 당시 내 세계에서는 가장 평화로운 곳이었다. 시비 앞에 앉아서 멀뚱거리다가 잠들었다. 내 잠은 그 때도 평온하지 못했는데, 눈이 너무 맵고 숨이 막혀서 깨고 만 것이다. ‘냄새는 담도 잘 타 넘지’ 저기 개미 때처럼 우글거리는 전경들이 쏴대는 최루탄으로 하늘은 앎둑앎둑 했었나보다. 내 평화는 깨지고 말았다. 나는 노태우가 미워서가 아니라 순간의 분노로 놈들에게 돌을 던졌다.(그 뒤로 가끔 심심할 때마다 가서 돌을 던졌는데, 그러다가 닭장차에 끌려가서는 작살나게 두들겨 맞고 학교에서 두 번 근신을 당한 뒤로는 관뒀다. 그 중 한 번은 억울한 게, 돌을 던진 것도 아니고 최루탄이 안개처럼 자욱한 거리를 그냥 지나다가 어떤 언니가 덴겁해서 주저앉아 울고 있기에 딴 데로 데려가려다가 잡힌 거였다. 난 아니라고 말할 때마다 뒤통수를 갈기더라. 끌려갈 땐 입 다물고 가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았다.) 나중에 ‘참 기특한 일을 한 거야’라고 생각해 봤지만 솔직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철모를 때였다. 날이 어두워 졌고, 시간을 보니 곧 야자는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가서 도시락가방을 챙겨와야지 내일 또 도시락을 싸 들고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학교로 갔다. 멀리 학교가 보이는데 턱 하고 숨이 막힌다. 창문 틈으로 세나오는 불빛들은 환영같이 멀었고 아무리 걸어도 닿질 않았다. 그때 가지 말았어야 했다. 힘들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까지 열심히 책상머리를 붙들고 있던 녀석들은 내게 개개한 눈빛을 흘렸고, 가방을 꾸역꾸역 챙겨서 나오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재수 없는 날 중 하나로 기억될 사건을 맞닥뜨리게 됐다. 담임이 아이스하키 스틱을 들고 서 있던 것이었다. 학생부실은 2층이었는데 그 복도를 지날 때만해도, 그 정적 속에서 발자국만 또각또각 귓전을 타고 올라도 나는 담담했다. 학생부실엔 담임과 학생주임이 있었다. 그의 첫 마디는 게궂게도 ‘이새끼’였고, 다음엔 ‘넌 뭐하는 놈이야, 어디 갔다 왔어’라고 물었다. 영화 보고 왔다고 했더니 재밌었냐고 묻는다. 재밌었다고 했더니 더 이상 다우치지 않더니 반만 죽이겠단다. 그렇게 인간적이라고 소문났던 담임은 아이스하키 스틱이 부러질 때까지 나를 쳤다. 나는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을 통해서 그 이상의 다구릴 타왔기에 충분히 맷집은 자신이 있었다. 다만 조금 권태로웠고 빨리 시간이 갔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담임이 인간적이라는 데에 부연 설명을 하자면 아무데나 치는 게 아니라 때린 곳을 또 때리고 몽둥이로만 사람을 패는 정도여서이다. 여하튼 종아리와 허벅지가 다 터졌고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때만 해도 견딜만했다. 그러다가 훔훔한 빛의 담임을 봤을 때, 세계가 징글징글했다. 허근거리며 겨우 집에 왔는데, 갑자기 서러웠다. 가방에서 김승희를 꺼냈고 ‘보리수나무 아래로’를 소리 내어 읽다, 겨우겨우 울음을 매잡다가 엉엉 통곡하고 말았다. 나는 나가고 싶었고 계속 나가고 싶었고 어떻게든 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보리수나무 아래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땐 그랬다.

3 thoughts on “소리 내어 시를 읽다

  1. 1
    뎡야핑 says:

    허억…-_- 저도 비슷한.. 아니 안 비슷한가?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후후=ㅅ=

  2. 2

    너같은 게 범죄자된다

    중학교 때 내 친구들은 내가 서태지랑 결혼할 줄 알았다고 하는데
    남들 다 하듯이 나도 스스로 태지 부인이라 자청하고 다녔고.. 대단히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원래 성격이 좀 설치는 성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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