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식힐 겸 뒷담화

새벽에 머리를 쥐어짜며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게 여간 곤욕이 아니다. 머리보다는 어깻죽지와 엉덩이가 더 쑤신다. ’15페이지 번역 정도야’라며 며칠간 룰루랄라 했는데, 10페이지를 하는데 어제오늘 꼬박 7시간을 투자했다. 아직 남은 페이지의 단어 한끝 한끝이 갑자기 죄다 꿈틀거리더니 슈우웅하고 머리 주변을 맴돌며 ‘약 오르지 약 오르지’하며 제자리로 돌아가질 않는다. 확 책을 덮어버렸더니 안정이 된다. 제발 뭐든 맞닥뜨려야 하는 버릇을 고쳐야 할 텐데, 평생을 가도 과연 가능할까. 가끔은 아주 가끔은 ‘계획적인 인간이 돼야지’ 다짐하지만, 조금 지난 후엔 어김없이 주변의 계획적인 인간들을 떠올리며 ‘역시 아니야’라며 싫어라 한다. 물론 그들 앞에선 별 내색 없이 언제나 부러움만을 표시하는 정도이기에 표면적인 관계는 적당히 좋다. 그중 한 후배가 있는데, 그 녀석은 본의 아니게 계획적이라서 아주 상당히 마음에 든다. 세미나 시작 후 어김없이 날마다 10분을 늦게 허겁지겁 들어와서는 안절부절못하는데, 교수님이 지각한 이유를 물으면 대답이 항상 새롭다. “버스가 안 왔어요”부터 “하숙집 아줌마가 붙잡아서…….”, “화장실이 급해서요”, “시계가 잘 못 됐나 봐요”, 등등. 여하튼 녀석 덕분에 10분은 휴식시간인 셈이다. 그걸 짜증스러워하는 누구는 교수님만 안 계시면 녀석을 잡아먹을 듯이 쪼는데, 어느 날인가 듣다 듣다 지쳐 ‘너나 잘해’ 했더니, 그 후로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이다. 사석에선 아예 쳐다보질 않는다. 다음부터는 잘 말해야겠어. ‘##야 부디 조용히 좀 해주겠니’ 이런 식으로. 물론 내 진심은 ‘닥쳐’다.


밤늦게 토너아저씨와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여전히 안 좋다. 일주일 전쯤에도 감기로 앓았기에 몸이 계속 아픈 거 아닌지 여쭸는데 새로운 일이 힘들어서라고 한다. 군포에 계시다가 임금체납으로 정남으로 공장을 옮겼다는데, 꼭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만큼이나 힘들다고 하신다. 오전 8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일을 하신단다.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고 했더니 당분간만 할 테니 괜찮을 거란다. 4월17일에 수원에서 이주노동자 체육대회가 있을 예정인데, 우선은 그곳에서 뵙기로 약속을 잡았다. (몇몇만 하는 엄한 체육대회 말고 소풍이나 가서 띵까띵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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